블루스타의 에버튼 이야기
2R 브라이튼전 후기. 본문
드디어 에버튼 구단 역사책의 새로운 첫 장이 펼쳐졌다. 이번 시즌부터 사용하게 된 신구장 힐 디킨슨 스타디움에서 첫 정식 경기가 펼쳐졌다. 상대인 브라이튼은 하필 지난 시즌 구디슨 파크에서의 마지막 개막전에서 3:0 패배를 안겨준 팀이었다. 신구장에서의 첫 경기부터 힘겨운 상대를 만났기에 사실 승리에 대한 기대를 딱히 하지는 않았다. 단지 리즈전보다는 낫기를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리고 기쁘게도 경기는 2:0 에버튼의 승리로 끝났다. 이기기는 했지만 여러 미스들로 인해 결정적인 실점 위기를 여러 번 맞아야 했는데, 운이 다소 따라주기도 했고 픽포드가 팀을 위기에서 끄집어 내기도 했다.
경기도 경기지만 신구장에 대한 감상을 다시 남기고 싶다. 이전에도 외관이나 내부 사진을 볼 때마다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경기를 앞둔 힐 디킨슨 스타디움의 모습은 그 전에 사진으로만 보던 것과는 완전히 궤가 달랐다. 특히 선수들 입장 시에 나오는 사이렌 소리 - Z Cars와 이어지는 팬들의 함성 소리는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웅장함이 있었고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이 영상은 앞으로 생각날 때마다 돌려볼 것 같다.
- 그릴리쉬와 픽포드, 이들이 잉글랜드 국가대표에 뽑힐 급의 선수인 데는 이유가 있다.
사실 이번 경기까지는 그릴리쉬가 교체로 출발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모예스를 너무 보수적인 사람으로 보고 과소평가를 한 것 같다. 모예스는 에버튼 선수들의 공 차는 꼬라지가 본인이 보기에도 큰일났다 싶었는지 그릴리쉬를 바로 선발 출전시켰다. 그리고 그릴리쉬는 구단이 왜 거금을 주고 자신을 임대했는지 그 이유를 곧바로 경기장에서 증명했다. 공을 잡을 때마다 자신에게 압박을 집중시켜 다른 선수들이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만들었고, 에버튼이 맞은 대부분의 찬스가 그러한 플레이로 기인한 상황에서 나왔다. 이전에 하메스가 그랬듯 이 정도 네임밸류의 선수가 좋은 플레이를 보여준다면 팀 전체에 자신감을 불어넣기도 하는데, 이번에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번 경기는 사이드라인에 붙어있는 시간이 길었지만, 시즌을 치르 면서 몸이 더 올라온다면 더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팀의 득점을 이끈 선수는 그릴리쉬이지만, 팀의 승점을 지킨 건 '이번에도' 픽포드였다. 브라이튼은 에버튼에 비하면 공을 소유하는 시간이 긴 팀이고, 이번 경기의 양상 역시 공을 잡고 있는 시간보다는 수비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하지만 공이 골문 근처에 도달하기 전 막아줘야 할 수비진의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특히 두드러진 건 베테랑 타코우스키와 레프트백이 익숙하지 않은 가너였다. 가너는 공격 시에는 득점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수비적으로는 민테를 상대로 끊임없이 고전했다. 심지어 왼쪽 센터백이 커버 범위가 좁은 킨이었기에 왼쪽 라인에서 사고가 나지 않기를 경기 내내 간절히 기도해야 했다. 다행이라면 민테가 돌파는 좋았지만 마무리의 퀄리티가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킨이 어느 정도는 커버를 해준 부분도 도움이 되었다. 타코우스키는 치명적인 미스를 2번이나 했다. 한번은 낙구 지점 파악을 잘못하여 터치 미스가 생겼고, 이 공이 미토마에게 가며 위협적인 슈팅을 허용했고 이 공이 골대를 맞으며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트래핑 과정에서 미토마의 손이 공이 2번에나 닿았기에 실점했더라도 취소될 가능성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류의 실책은 애초에 나와서는 안 되는 미스이다. 그런데 그는 몇 분 후 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는데, 볼 처리를 뜸들이다가 겨우 선택한 백패스가 하필 픽포드를 압박하던 오라일리에게 정확히 간 것이었다. 웬만해선 실점하지 않는 것이 더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이 상대의 1대1 찬스에서 픽포드가 오라일리의 슛을 막아내며 타코우스키가 싸지른 거대한 똥을 한번에 소각해 버렸다.
후반전에도 결정적인 실점 위기가 있었다. KDH가 박스 안에서 상대 슈팅을 블락하던 과정에서 공이 손에 맞아 핸드볼 PK가 선언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픽포드의 '그 물병'이 또 한 건 해냈다. 픽포드는 PK 상황마다 키커로 누가 나서는 지 본 후 꼭 한 번씩 물을 마시는데, 이는 단순히 물을 마시기 위한 것도 있지만, 물병에 붙어있는 자신만의 PK 분석 자료를 보기 위해서이다. 대체 어디서 구해오는 건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키커별로 PK를 자주 차는 코스를 좌중우로 나누어 퍼센트에이지로 구분하여 물병에 붙여놓곤 한다. 실제로도 꽤 효과가 있어 보이는 것이, 지난 시즌 팀이 허용한 2개의 PK를 모두 선방했으며(고든, 홀란), 리즈전에서도 은메차의 PK를 방향까지는 맞추는 데 성공했다(얘는 다른 리그에서 온 건데도 어떻게 맞춘걸까).픽포드의 이런 행위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현재로써는 막을 방법이 딱히 없는 상태이다^^. 이번에도 이러한 데이터 분석이 통했는지 웰백의 PK를 정확히 선방하며 팀을 구했다. 놀라운 것은 선방 이후 픽포드의 물병을 카메라가 잡아주었는데, 웰백의 PK 방향이 좌우 50:50이었다는 점이다. 즉, 찍기도 정확히 찍었다는 것이다. 다소 괴상한 멘탈로도 유명한 픽포드이기에, 데이터 분석 뿐만 아니라 심리전에도 강점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지독하던 잉글랜드의 메이저 대회 토너먼트 승부차기 잔혹사를 끊은 키퍼도 바로 픽포드였으니 말이다. 반면 웰백은 전반전 완벽한 득점 찬스에서 홈런을 날리더니 PK까지 놓치며 명예 에버튼 선수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하고 말았다.
- 짤막한 전술 이야기
라인업 상 리즈전과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그릴리쉬의 선발 출전과 은디아예의 라이트윙 출전, 그리고 최전방에 베투 대신 바리가 선발로 나섰다는 점이다. 반면 리즈전에서 가장 큰 원성을 샀던 레프트백 가너와 게예 파트너 이로부남의 구성은 그대로 가져갔다. 전반적인 공/수 시 대형은 리즈전과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빌드업 시에는 게예가 다소 6번처럼 움직이며 내려오고, 이로부남이 조금 더 전진하여 433형태를 만들었고, 수비 시에는 KDH이 원톱과 함께 압박 1선을 구성하는 442에 가까웠다. 또한 공격 시에 볼란치에서 전진하는 한 명은 이로부남으로 시작했지만 때때로 게예와 스위칭이 되기도 했다. 다만 2골은 모두 이로부남이 아닌 게예가 올라갔을 때 나왔다는 점...
리즈전과의 경기력 차이를 만들어 낸 결정적인 요인은 윙어진의 변경이라고 생각한다. 리즈전에서는 3선을 통한 전개가 아예 막혀 버리니 라이트백 오브라이언을 높이 올려 롱볼을 시도하는 단조로운 전개가 이어졌다. 이 때의 문제는 라이트 윙으로 나선 선수가 알카라스였다는 점이다. 전문 풀백이 아닌 선수와 전문 윙어가 아닌 선수의 조합은 오른쪽 측면에서의 영향력을 아예 거세시켜 버렸다. 리즈 입장에서는 오브라이언이 알카라스 쪽으로 내보낸 볼이 가는 것만 막으면 되었고, 개인 탈압박 능력이 아쉬운 알카라즈는 그대로 묶여버렸다. 하지만 윙어진이 그릴리쉬-은디아예로 바뀐 브라이튼전은 달랐다. 은디아예는 압박이 들어오더라도 개인 단위의 탈압박이 가능한 선수고, 바리는 베투에 비하면 윙어의 움직임을 지원하는 데 능력을 보여주었기에 측면에서 풀어나오는 데 보다 개선된 모습이 나왔다. 왼쪽에서는 KDH이 세컨톱보다는 왼쪽 메짤라처럼 움직이며 측면의 그릴리쉬를 지원하는 형태가 나왔다. 그릴리쉬가 빛나기는 했지만 사이에서 부품 역할을 한 KDH의 역할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후반전 은디아예 대신 알카라스가 교체투입되며 또 리즈전과 같은 양상이 나오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었는데, 잘 뛰고 있던 이로부남이 부상 증세를 보이며 맥닐과 교체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는 즉 윙카라스를 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대신 듀스버리홀이 잠시 볼란치 자리로 내려가 게예와 파트너쉽을 이루었는데, 하필 여기서 PK를 허용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PK 이후 대형은 게예가 원볼란치 역할을 수행하는 4141에 가까워졌다. 디블링이 결국 영입되면서 2선의 가용 자원이 늘어났기에, 앞으로도 종종 볼 수 있을 포메이션으로 생각된다. 근데 4141을 쓰려면 게예 말고 조금 더 경합에 강한 6번 타입의 미드필더가 필요하지 않나라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다... 빨리 영입하길.
- 개인적인 평점
#선발
픽포드 - 9 : 전반전 오라일리에게 내준 결정적 찬스서의 선방, 웰백의 PK 선방. 이 2개의 선방만으로도 2골은 막았다고 볼 수 있다. 브라이튼의 xG(기대득점)가 2.5 이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승리의 1등 공신이 아니래야 아닐 수 없다. 구디슨 파크의 수호신에서 힐 디킨슨 스타디움의 수호신으로 변모 중.
오브라이언 - 7 : 공격적으로는 영향력은 적어도 크게 모난 부분은 없었다고 생각하며, 수비적으로는 미토마를 나름 제어하는 데 공헌을 세웠다고 생각한다. 경기 직전 아내가 출산을 하여 아빠가 되었다고 한다. 가정에서와 경기장 안에서 모두 승리자가 된 남자.
타코우스키 - 5 : 전반전 낙구 판단 미스로 미토마에게 찬스를 내준 장면, 사실상 실점에 가까웠던 백패스 미스, 이외에도 전반전의 타코우스키는 다른 경기들에 비해 정줄을 조금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후반전에는 무난했지만 보통의 경기들과 다르게 오늘은 킨이 더 나은 경기력을 보였다.
킨 - 6 : 평소라면 타코우스키보다 먼저 정줄을 놓거나, 파트너를 따라서 정줄을 놓았어야 할 마이클 킨이지만 오늘은 딱히 그러지 않았다. 전문 풀백이 아닌 가너가 민테를 상대하는데 계속해서 애를 먹었기에 이 부분을 커버하는 역할까지 해야 했는데,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준수하게 해냈다. 왼쪽에서 오른쪽 사이드로의 좋은 롱패스 퀄리티를 보이며 킥 능력을 증명하기도 했다.
가너 - 7 : 사실 득점이 아니었다면 7점이 아니라 5점을 걱정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도 익숙하지 않은 자리에서 꽤나 고생 중. 이런 선수에게 민테는 사실 상대하기 쉬운 선수는 아니다.
게예 - 7 : 간간히 아쉬운 선택지가 있었고, 몸싸움에서 밀려 위기를 초래한 장면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자신이 왜 나이가 들어도 대체가 안 되는 자원인지 보여주었다. 기본적으로 사이즈가 작은 선수임에도 치열하게 경합해서 공을 따내는 모습을 보면 참 많은 생각이 든다. 득점 장면들에서도 난이도가 낮지 않은 패스를 성공적으로 연결하여 제 몫을 해냈다.
이로부남 - 6 : 중원 쪽수에서부터 밀려 아무 것도 못한 리즈전과는 달리 브라이튼전에서는 번뜩이는 모습들이 일부 있었다. 2경기 2경고는 아쉽지만 아직 어린 선수니 계속 성장을 기대할 만한 정도의 활약상은 보여준 것 같다. 큰 부상 아니었으면...
은디아예 - 7 : 사실 득점 장면을 제외하면 영향력이 엄청나게 큰 모습은 아니었지만... 밀리는 분위기에서 선제골의 영향력만 해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을 차지한다. 구디슨 파크의 마지막 득점자가 힐 디킨슨 스타디움의 첫 득점자가 되어 구단의 역사책에 자신의 이름을 다시 한번 적어넣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릴리쉬와의 파트너쉽도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듀스버리 홀 - 7 : 이 선수가 첼시에서 주전이 아니었음에도 왜 첼시팬들에게 사랑받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공격적으로 부품같은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한 것도 있지만, 왕성한 활동량과 압박 및 수비가담이 더 눈에 띄었다. 정말 열심히 뛴다는 것이 보이는 선수이고 앞으로 에버튼에서도 더 사랑받는 선수가 될 것 같다. 핸드볼로 PK를 내준 건 아쉽지만 픽포드가 막아주었으니 해프닝이죠?
그릴리쉬 - 8 : "어 그래 형은 중위권 에이스로 1600억에 맨시티 갔어" 당연히 잘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첫 선발 경기부터 이렇게 잘해줄 줄은 몰랐다. 역시 짬통은 빅클럽 짬통이 갑이라던가, 다른 선수들과는 결이 다른 볼키핑, 센스에 수비력까지 보여주었다. 2개의 어시스트는 솔직히 득점자들이 잘 받아준 부분도 있지만, 이 선수가 단순히 사이드에서 공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팀에는 큰 영향력이 된다.
바리 - 7 : 직접 골문을 노린 케이스가 적기도 하고 정확성은 아쉬웠지만, 모예스가 원톱에게서 제일 중요하게 보는 것은 득점이라기 보다는 2선을 돕는 플레이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오늘의 바리는 합격점을 줄 만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바리가 전방에서 공을 지켜주지 못했다면 두 득점장면 모두 나오지 않았을 장면이다. 선제골 장면에서는 중앙으로 수비들을 끌고 들어가는 더미런을 통해 은디아예가 달려들며 그릴리쉬의 크로스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했다. 오늘 정도면 베투와의 주전 공격수 경쟁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교체
알카라스 - 6 : 오늘은 교체로 나와서 많은 터치가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알카라즈 투입을 기점으로 팀의 포메이션이 휙휙 바뀌는 걸 보면 유용한 조커감으로 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베투 - 6 : 베투는 참 투명한 선수다. 흥이 오르거나 조급할 때나 그 모습이 플레이에서 다 보인다. 오늘도 압박을 하다가 다소 멍청한 태클로 경고를 드셨다. 그거 말고는 루이스 덩크를 상대로 한 치달 장면만 임팩트가 있었다. 그래도 컵대회는 베투가 선발로 나오지 않을까?
맥닐 - 6 : 이로부남이 예상치 못한 부상 증세를 보여 교체 투입되었다(아니었으면 나오긴 했으려나). 득점에 가까운 장면들이 있었으나 다소 아쉬운 판단과 슛이 나오며 날려드셨다. 디블링까지 오면 진짜 어느 포지션에서 나올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팔기는 아쉬운 자원.
암스트롱 - N/A : 그릴리쉬의 기립박수용 교체. 컵대회 선발 나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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