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타의 에버튼 이야기
3R 울버햄튼전 후기 본문
몇 시즌 만의 긍정적인 시즌 극초반이다. 아무리 울브스의 시즌 초반이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항상 어려웠던 몰리뉴 원정에서의 승리는 꽤나 값지다. 안첼로티 시기 이후로 처음 아닌가. 게다가 8 9월엔 승점 하나 쌓기도 힘겨웠던 지난 시즌까지의 에버튼, 슬로우스타터 소리를 들어왔던 기존 모예스의 평가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3라운드만에 승점 6점이라고요? 천하의 에버튼이? 요즘 AI 합성 기술의 성장이 확실히 두드러지나 보다.
3:2라는 스코어에서도 알 수 있지만 아주 쉬운 경기는 아니었다... 사실 울브스의 공격은 점유율만 높았지 막판 몇 분을 제외하고 그리 날카롭다는 인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비진의 다소 안일한 수비로 인해 계속해서 추격을 허용해야 했다. 두 실점 모두 상대의 침투가 좋기는 했지만 수비수들의 다소 안일한 대응이 화근이 되었다. 첫 실점 때는 타코우스키가 조금 더 열심히 뛰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고, 두번째 실점은 대놓고 미콜렌코가 정줄을 놓다가 뒤에서 들어오는 호드리구에게 실점을 허용했다. 미콜렌코는 지난 시즌도 지지난 시즌 막판의 부상으로 인해 시즌 준비가 늦어서 그런지 시즌 초반에 구린 폼을 보여줬었는데, 올해도 그런 흐름이다. 심지어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자마자 부상 때문에 팀에 복귀했다고 한다. 얘를 대체 어쩐담?
공격진은 그래도 칭찬할 만했다. 그릴리쉬-KDH-은디아예-베투 모두 하나 이상의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제 몫을 했다. 특히 베투가 의외였다. 부에노-아그바두-토티의 3백을 상대로 하며 경합과 홀드업 면에서 이전에 비하면 훨씬 나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원터치로 내주려는 시도도 많아졌으며 나름 결과물도 괜찮았다. 잘하다가도 한두번씩 낮은 축구지능을 티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 정도면 합격점을 줄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제 봐도 축구선수보다는 농구선수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그릴리쉬는 브라이튼전에 이어 울브스전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내비쳤다. 어시스트 2개를 포함해 팀의 3골에 전부 관여했는데, 오히려 어시스트 장면이 아닌 2번째 득점장면이 더 인상 깊었다. 킨이 전방압박을 성공하며 높은 위치에서 공격이 전개되었는데, 페널티 박스 안에 있던 그릴리쉬에게 KDH가 패스를 건넸고 곧바로 상대의 강한 압박이 들어왔다. 그런데 기존의 에버튼 선수라면 당연히 뺏겨야 했을 공을 그릴리쉬는 지켜낸다. 그 후 센스있게 상대 수비진을 폴짝 뛰어넘어 침투하는 KDH에게 정확한 패스를 건넸다. 이 역시 기존 에버튼 선수라면 당연히 똥패스로 끊겼을 패스였다. 아무튼 침투에 성공한 KDH가 그대로 왼발로 컷백을 시도했고 은디아예가 득점에 성공했다. 또 하나의 놀라운 점은 여기서 베투가 공을 흘렸다는 것이다. 사실 자기가 건드리려고 한 건데 못 건드린 것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그냥 그런 걸로 생각해 주는 게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 짧막한 전술 이야기
아직 부상으로 빠져있는 브랜스웨이트와 바리와의 본격 경쟁에 돌입한 베투를 제외하면 올 시즌 베스트11으로 출전할 것이 유력한 선수들로 모두 선발로 나섰다. 드디어 가너가 땜빵신세를 피하고 3선으로 돌아와 게예와의 파트너쉽을 다시 구성했고, 미콜렌코가 다시 레프트백 자리에 돌아왔다. 그래서 그런가? 이전 경기들처럼 4411(4231) 대형으로 시작했다가 공격 시 4141과 같은 대형으로 변형되는 모습은 동일했지만 디테일은 조금 달랐다. 가장 달라진 것은 KDH의 위치였다. 이전 경기들처럼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것은 동일했지만, 주 활동 반경이 달라졌다. 이전 경기들에서는 그릴리쉬가 있는 왼쪽에 조금 더 치우친 움직임을 가져갔다면, 이번 경기는 반대로 오른쪽에 조금 더 치우친 움직임을 가져갔다. 결과적으로는 1골 1어시를 기록했지만, KDH가 이 공간에서 활동한 것이 그리 긍정적인 영향력을 가져다 주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KDH의 공격포인트는 모두 이전 경기들처럼 왼쪽에서 그릴리쉬가 만들어준 공간을 활용하면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오른쪽에서는 시야나 기술적 측면의 아쉬움으로 인해 공이 방출되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 정확도도 높지는 않았다. 또한 라이트백으로 출전한 오브라이언이 활동할 만한 공간까지 함께 막혀버리는 역효과를 나았다고 본다. 오브라이언은 아직 라이트백으로서의 숙련도가 완벽하지도 않을 뿐더러, 큰 신체 사이즈와 다소 저돌성을 활용하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라이트백으로서 잘 기능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활동할 만한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KDH가 오른쪽 공간에서 주로 활동한다는 것은 라이트윙인 은디아예 또한 우측 사이드라인에서 주로 활동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곧 오브라이언이 활동할 공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오브라이언은 공격 시에 다소 얼타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고, 전문 라이트백의 필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대형을 들고 나와야 했을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인데, 하나는 상대의 대형에 대한 대응책이고, 다른 하나는 가너가 주 포지션으로 돌아오면서 생긴 변화이다. 울버햄튼은 3백을 즐겨 쓰는 팀이다. 즉, 상대팀이 442의 형태로 전방압박을 하더라도 한 명의 수비수가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원톱을 즐겨 쓰는 에버튼이 442 형태로 압박하려면 공격형 미드필더가 투톱의 역할을 하듯이 압박 대형을 구성해야 하는데, 이 역할을 하는 선수가 KDH이다. 사실 울브스의 센터백들은 중앙의 아그바두를 제외하면 빌드업 능력이 특출나지는 않다. 하지만 윙백을 보면 오른쪽의 차추아보다 왼쪽의 부에노가 좋은 온더볼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좌우 윙어인 그릴리쉬와 은디아예가 윙백 하나는 무조건 맡아야 된다고 했을 때, 풀백 미콜렌코와 오브라이언이 다른 윙백을 맡아야 했다. 이 때 모예스 입장에서는 민첩성이 다소 아쉬운 오브라이언이 부에노를 놓치는 상황을 예방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은디아예가 부에노를 맡고, 그릴리쉬는 부에노가 상대 중원에게 주는 패스길을 가리는 역할을 맡았다. 원톱인 베투는 아그바두를 대인 마크했기 때문에, KDH는 울브스의 좌우 스토퍼인 부에노와 토티 중 하나를 막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이 은디아예가 상대 윙백을 막고 그릴리쉬는 미콜렌코에게 다른 윙백을 맡긴 채 중원을 향하는 패스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KDH의 마크맨은 왼쪽 스토퍼인 토티가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활동 반경이 아군의 오른쪽 라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대신 공격 시에는 미콜렌코와 게예가 평소 KDH가 뛰던 자리를 대신 점유해주는 장면들이 나왔다. (그래도 득점장면은 결국 KDH가 왼쪽에 있을 때 나왔다는 것...)
가너가 3선으로 돌아오는 것과 KDH가 오른쪽으로 가는 것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우선은 가너와 게예의 선수 특성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게예는 확신의 6/8번 하이브리드 유형의 선수이다. 기술적으로 뛰어나지는 않더라도 후방에서의 수비 능력과 볼 전진 능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너는 킥은 좋지만 볼 전진에는 딱히 강점이 없다. 대신 후방에서 전개 시에 게예보다는 조금 더 일관성이 있는 느낌이기는 하다. 물론 탈압박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래서 모예스는 게예보다는 가너를 6번에 더 가깝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가너와 게예가 함께 나오면 둘 다 오른발잡이이지만 한 명은 왼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보통은 게예가 왼쪽으로 간다. 그렇기에 4141같은 대형이 나올 때 올라가는 선수는 게예가 되는 것인데, 게예가 올라가는 위치는 왼쪽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기존 2선에 있던 KDH가 한 쪽으로 치우친 움직임을 가져간다면 이는 왼쪽이 아닌 오른쪽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구성에서 울브스전 가너는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KDH는 분명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가너가 왼쪽으로 가고 게예가 오른쪽으로 갔으면 좋겠다. 제발 모예스가 수정해주길.
- 울버햄튼
비토르 페레이라는 모시리 전 구단주 시절 모시리와 친한 에이전트인 주라브키안의 입김 때문에 에버튼 감독 선임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결국 모시리가 램파드를 택하면서 비페의 에버튼행은 무산되었지만, 당시 감독 선임 시 PL 경험을 중시하던 모시리가 주도하는 감독 선임에서 그의 이름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모시리는 또 한 번의 괴담을 써내려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던 비페가 지난 시즌 소방수로 울버햄튼에 입성했고, 팀을 잔류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역시 올해 초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에버튼전에서는 우선 주전 원톱인 라르센의 부재가 커보였다. 또한 2선에 다른 느낌을 불어넣을 수 있는 선수인 페르 로페즈의 벤치 시작도 울브스 입장에선 아쉬운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둘이 선발로 출전했다면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황희찬은 득점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그 외 장면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라르센이라면 황희찬의 득점장면과 같은 장면은 나오기 힘들었겠지만 울브스에게 치명적인 기회를 더 많이 내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영향력 있는 원톱의 부재는 라인업 발표 시부터 해볼 만하다는 느낌을 받게 해주었고 양 팀 간의 유효한 체급 차이를 만든 요소였다.
- 주관적 평점
# 선발
픽포드 - 6 : 브라이튼전에 비하면 평이했다. 2실점은 수비수들의 미스에 더 초점을 맞춰야 되지 않나 싶다.
오브라이언 - 6 : 전문 풀백이 아니라는 것과 사이즈가 크다는 신체적 한계 때문인지 몰라도 공격적으로 뭔가 답답했다. 이래서 전문 풀백이 필요하다 봤는데...
타코우스키 - 6 : 브라이튼전처럼 눈에 띄는 실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높게 평가하기도 힘든 경기. 첫 실점 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킨 - 6 : 실점 장면들에서 분명 아쉬운 부분을 찾을 수 있지만 어쨌든 3, 4옵션 센터백 치고는 준수한 활약을 이어가는 중. 2번째 득점의 기점 역할은 덤.
미콜렌코 - 6 : 그릴리쉬의 움직임에 맞춰 보조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는 모습이 좋았고, 2번의 득점 기점같은 역할도 수행했다. 하지만 실점 장면에서의 정줄 놓은 듯한 모습이 아쉬웠다. 시즌 초라 체력이 덜 올라왔나?
가너 - 7 : 수비적으로도 준수했고 빌드업 코어로서 기능하는 역할도 오늘은 어느 정도 잘 수행했다고 생각.
게예 - 6 : 한창 좋을 때에 비하면 오늘은 다소 아쉬운 경기.
은디아예 - 7 : 정발 윙어로 플레이하다 보니 왼쪽에서 뛸 때만큼의 차력쇼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같은 스탯 적립만으로도 팀에는 큰 영향력이 되며, 오른쪽에서의 영향력도 괜찮은 수준은 된다. 괜히 지난 시즌 에이스가 아닌 듯.
KDH - 7 : 지난 경기들에 비해 활동 반경이 살짝 바뀌었는데, 공격적으로는 득점 장면들을 제외하면 아쉽긴 했다. 그래도 그릴리쉬의 최고의 조력자로서의 역할은 계속해서 증명 중
그릴리쉬 - 8 : 이미 잭(해리슨 아님)의 존재는 팀에서 너무 커져버린 것 같다. 어시스트는 그의 영향력에 대한 포상이라고 쳐도, 그 공격포인트 하나하나도 팀에게는 매우 귀중하고, 잭 덕분에 팀이 공을 몇 초는 더 소유할 수 있게 된다.
베투 - 7 : 오늘은 상대 수비수들과의 경합도 어느 정도 잘 이겨냈고, 연계도 살짝 늘은 듯한 모습이었다. 중간중간 부족한 기본기와 지능이 드러나는 장면들이 있기는 했다. 그래도 득점까지 기록했고, 다른 경기들에 비하면 훨씬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한 경기.
# 교체
이로부남 - 6 : 게예와 교체되어 들어왔는데, 팀이 슬슬 밀리던 시점이라 크게 보여준 건 없다.
바리 - 6 : 공중볼을 따주는 부분에선 확실히 베투보타 훨~씬 낫다. 그래도 보여줄 건 딱히 없었던 경기.
알카라스 - N/A : 그릴리쉬 배터리 역할
콜먼 - N/A : 막판 잠구기 + 추가시간 소비용으로 교체되어 들어오셨다. 에버튼에서의 17번째 시즌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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